가족을 떠나보내고

2013년 9월 27일 4시 10분.

할머니가 떠나셨다.
병원에 가셨던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나서 정신이 멍해졌다.
아픈 일은 한꺼번에 같이 온다던가?
그날은 병원에서 심각할 수도 있다는 진료를 받고회사에서 일찍 돌아온 날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를 신촌 세브란스로 옮기기로 하여 장례식을 하루 늦춘다고 한다.
학교에서 헐레벌떡 뛰어온 동생과 함께 나갈 준비를 하다가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씀에 다시 멍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비어버린 저녁.
침대 한 구석에 던져 놓았던 핸드폰이 울린다. 오래된 동네 친구 녀석의 전화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중간에 저녁을 먹지 못한 동생도 불러서 같이 끼니를 때웠다.
동생을 일찍 보내고 새벽 늦게 까지 친구와 함께 조용히 길을 걸었다.

첫날,
가족을 먼저 식장에 보내고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았다.
소식을 듣기 전만 해도 큰일이었던 몸 상태가 이제는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진료를 마치고 몸을 꽉 죄는 정장을 입고 식장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의 모습에 반갑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분향소 안 꽃 위에 놓여진 할머니 사진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많은 손님들이 왔다 갔지만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염을 한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후 처음으로 할머니를 마주하였다.
하얀 네모진 천조각을 들추니 할머니 얼굴이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와는 다른 것 같아 다시 자세히 보았지만 여전히 이질감이 느껴진다.

안내사처럼 보이는 분이 할머니의 몸을 닦고 한지처럼 보이는 종이로 몸을 감싼 후 갈색 삼베옷을 입히기 시작한다.
할머니 손에 자랐던 한 살 위 형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옆에서 가장 오랜 시간 간호하며 시간을 보냈던 어머니도 울기 시작한다.

염을 반쯤 마쳤을 즈음 안내사가 마지막으로 할머니 손을 잡아보라고 했다.
하나둘 새하얀 할머니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거나 눈물은 훔친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질감 때문인지 결국 손을 잡지 못했다.

염이 끝난 후 할머니를 나무로 된 관으로 옮겨 드렸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 발인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비가 쏟아 붓듯 내리는 날이다. 새벽 네시 즈음 깨어나 발인 예배를 마친 뒤 할머니를 옮기러 간다.

할머니는 인천에서 화장하기로 하였다.

이유인 즉슨 할머니는 인천 주민이기 때문에 인천에서 화장하는 것이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 몇 배나 싸기 때문이란다.
이럴때마다 당당하게 등장하는 돈문제에 머릿속이 움찔한 기분이 든다.

장례 버스에 타고 인천으로 출발한다.
삼일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인지 버스 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인천에 도착하고 나서 잠이 다 깨기도 전에 관을 화장하는 곳으로 옮겼다.

안내사가 대기실로 가야한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같이 보이는 문이 창너머로 보이는 자그마한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몇 분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아까전에 옮겼던 관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누워있는 관이 천천히 어두운 공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시간 반.
불속에서 할머니가 하얀 조각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조그마한 하얀 단지 안에 든 할머니를 안고 또다시 벽제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조금 전까지 심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다.
할머니를 벽제에 위치한 납골당 안 벽장처럼 보이는 공간 속에 놓아 두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생전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지난주 즈음이었을 것이다.
고통이 너무 심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몰핀을 맞아서 손자, 손녀도 못 알아보시던 할머니.
그래도 여전히 목소리 만큼은 크셨던 할머니.

오늘 아침 병원을 다녀왔다.
열에 아홉은 치료가 되어도 후유증이 남는 병이라고 했었지만,검사 결과정말 운 좋게도 그러한 확률에 벗어난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 문득, 할머니가 날 지켜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 둘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행복하셨을까..? ...잘 모르겠다.
할머니 당신의 의지보다는 자식의 바램으로 약과 치료로 마지막을 보내셨던 할머니.
아파도 당신께서 원하시던 대로 치료를 하지 않고 남은 인생을 살던 곳에서 보내게 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은 편히 눈을 감으셨겠죠?
평생 자식과 손자를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여유는 없으셨던 할머니.
이제는 걱정 없이 훨훨 날아가시길.

날씨가 너무 좋네요. 할머니.


WRITTEN BY
강수명 Vanns Kang
하고 싶은거 하고 사는 조금은 잘 빡치는 평화주의자